발달장애인 모델, 런웨이에 서다… ‘나만의 걸음’으로 보여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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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도 괜찮아요, 나만의 속도로 설 수 있는 무대니까요”
지난달 17일 남양주 금곡실내체육관에서 조금 특별한 패션쇼, ‘인클루시브 런웨이 W’가 열렸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다소 빠른 걸음과 과감한 포즈로 무대를 누비는 모델이 있는가 하면, 다른 참가자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이도 있었다. 화려한 의상이나 능숙한 포즈는 없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워킹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인클루시브 런웨이 W’는 남양주시장애인복지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사로, 발달장애인 18명이 모델 교육을 받고 직접 무대에 오르는 패션쇼 프로그램이다. 행사명은 장애 유무나 신체적 조건과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포용적 디자인)’ 개념에서 착안했다. 장애 유무나 무대 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런웨이에 올라 자신만의 개성과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포용’의 가치를 무대 위에서 구현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런웨이의 첫 주자로 나선 김민정(28)씨는 직접 고른 하얀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환하게 웃는 연습을 했다는 김민정 씨는 조명 아래에 서자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피날레까지 지켜보고 나니, 이 특별한 런웨이가 완성되기까지 이어졌을 고민과 준비 과정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됐다.
◇“사회 생활 해보고 싶지만, 막막해”… 나를 표현하는 연습부터
이번 행사는 사회 경험의 첫 문턱에 선 발달장애인 청년들에게 주체적인 표현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행사 기획을 맡은 남양주시장애인복지관 신주환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 상담하다 보면 사회활동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발달장애인 청년들이 많다”라며 “다만 정작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자신을 스스로 탐색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표현해 보는 경험을 마련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워킹만 배우는 소규모 교육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참가자들이 배운 동작을 실제로 선보일 수 있도록 패션쇼로 확장했다. 교육 과정에서는 포토 모델 수업을 병행해 프로필 사진을 촬영했고,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도전 과정을 오프닝 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의상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특별했다. 일반적인 패션쇼가 기획된 의상을 모델이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번 행사에서는 무대에 오르는 것뿐 아니라 어떤 옷을 입을지 선택하는 과정부터 자기표현의 기회로 삼았다. 참가자들은 직접 옷을 입어보며 선호하는 스타일을 찾았고, 지도진은 체형과 무대 전체의 조화를 고려해 선택을 도왔다. 신주환 사회복지사는 “사회생활에 앞서 스스로를 정돈하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데,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라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보고, 일상에서 자기 관리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히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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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걸음에서 당당한 워킹으로… 자신감도 자랐다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모델 교육을 총괄한 대경대 K모델연기과 김영민 교수는 참가자들의 집중력과 학습 속도를 고려해 수업 방식부터 조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영민 교수는 “일반적인 모델 수업과 다르게 20분 수업 후 5분 휴식을 취하며 쉬는 시간을 자주 가지는 방식을 선택하고, 참가자들과 일단 친밀감을 쌓으려 노력했다”라며 “무엇보다 각자의 특성에 맞춰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도진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습득 속도와 필요로 하는 신체적·정서적 지원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세부 교육을 맡은 이나희·정지호 보조 강사는 교육 초기부터 참가자들의 행동을 세밀히 관찰하며 개별 지도를 진행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참가자에게는 편안한 방향에서 손을 잡아주고, 턱을 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참가자에게는 양옆에서 속도를 맞추며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웠다.
세심한 지도와 반복 연습이 쌓이면서 참가자들에게는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일직선으로 걷거나 무대 포즈 존에서 멈춰 서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참가자들이 교육이 거듭될수록 안정적인 워킹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행사 당일에는 지도진의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당당한 워킹과 포즈를 선보여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변화는 참가자들의 일상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신주환 사회복지사는 “평소 수동적이었던 참가자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나 이거 하고 싶어요’라며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늘었다”라며 “일상에서도 한층 밝고 당당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 있는 성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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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아래에서도 계속될 수 있도록… 포용의 기회 넓혀야
런웨이를 마친 김민정씨의 표정에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김씨는 “포즈와 표정 연습을 많이 했는데, 무대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객들 앞에 서본 것뿐만 아니라, 다 같이 합을 맞춰 무언가를 완성해 본 경험도 처음이었다”라며 “떨리고 어색했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어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뿐 아니라 무대를 함께 준비한 관계자들에게도 뜻깊은 경험이 됐다. 김영민 교수는 “나 역시 편견이 있었는데, 직접 교육하면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매력과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며 “대중의 편견을 없애려면 발달장애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주환 사회복지사도 “발달장애인 청년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기획한 행사지만, 시민들도 발달장애인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며 “발달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면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고 교류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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